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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웅명장의 서재
예수님, 예수님의 이름이 제 삶의 중심이 되게 하소서.(누가복음 2장 21절)“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컫는 바러라.” (누가복음 2장 21절)주님,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의 낮아지심 앞에 오늘도 조용히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셔서 율법 아래로 들어오시고, 우리의 아픔과 눈물과 죄의 자리에까지 내려오셨다는 그 사실이 저의 영혼을 깊이 흔듭니다.주님, 저는 너무 자주 제 이름으로 살아왔습니다. 주님의 이름보다 제 욕심과 상처를 붙들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라는 이름 ‘안’에 죄인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죽은 영혼을 다시 숨 쉬게 하시는 생명의 은혜가 담겨 있음을 믿습니다.주님, 제 안의 교만을 할례하여 주소서..
주님, 저는 주님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우리의 눈은 자주 흔들립니다. 형통해 보이는 악인의 길을 볼 때, 마음은 흔들립니다. 왜 저들은 잘되고, 왜 나는 기다려야 하는가? 그 질문이 우리의 기도를 가로막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다른 길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늦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깊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악인의 번성은 잠시의 그림자 같고,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한 빛과 같습니다. 복음은 바로 여기에서 우리를 붙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완전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십자가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불의를 방관하지 않으시며, 동시에 죄인인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고.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비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조건이 아니라, 먼저 내어줌에서 시작됩니다.우리는 종종 사랑을 교환으로 이해합니다. 서로를 만족시킬 때 유지되는 관계, 기대에 부응할 때 지속되는 약속. 그러나 십자가는 전혀 다른 사랑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을 때, 아직 온전하지 않았을 때,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자격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자격을 만들어 가는 은혜입니다.결혼은 바로 그 복음의 그림입니다.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된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의 결합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존재로 ‘부름’ 받는 신비입니다. 그 관계의 중심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결혼은 쉽게 끊어지는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이 증인이 되시는 언약입니다. 흔들리는 감정 위에 세워진 것이 아..
주님의 말씀을 영혼 깊은 곳에 품고 살아가게 하소서.(누가복음 2장 15-20절)주님, 천사의 말을 들은 목자들이 지체하지 않고 베들레헴으로 달려갔던 그 밤을 묵상합니다. 차가운 들판 위에 남아 있던 두려움보다 그들의 마음에는 주님을 향한 갈망이 더 컸습니다. “가서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그 간절한 발걸음 속에 잃어버린 생명을 찾아가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음을 봅니다.주님, 목자들이 마침내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를 보았던 것처럼 오늘 제 영혼도 다시 주님을 만나게 하소서. 낮고 초라한 말 구유 속에서 세상을 살리실 구원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 제 교만함과 완고함을 내려놓게 하소서.주님, 마리아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겨 깊이 생각하였듯이 저도 말씀을 스쳐 지나가지 않게 하시고, 영혼 ..
참된 복음은 그 은혜를 '소유'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화려한 자줏빛 옷에 가려진 한 영혼의 지독한 빈곤과, 헌데투성이 몸으로 대문 앞에 누워있던 나사로의 영적 풍요를 대조하며 우리의 가슴을 두드립니다.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거저 주시는 인자한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호흡하는 시간, 손에 쥐어진 재물, 곁에 있는 가족과 교회는 그분의 조건 없는 은혜입니다. 하지만 참된 복음은 그 은혜를 '소유'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은혜를 '유통'하는 변화된 삶으로 우리를 초청합니다.심판의 불꽃 속에서 부르짖던 부자의 때늦은 기도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간절한 구원의 기회인지를 역설합니다. 가나안 땅이 거저 주신 은혜였기에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 하셨던 ..
예수님을 따라, 평생 주님을 찬양하며 살게 하소서.(누가복음 2장 8-14절)주님, 고요한 베들레헴 들판의 어둠 속에서 목자들에게 하늘이 열리던 그 밤을 묵상합니다. 세상은 잠들어 있었지만, 주님은 가장 낮고 외로운 자들을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두려움 ‘속’에 떨던 목자들처럼 저 또한 불안과 염려 속에서 살아왔고, 알 수 없는 내일과 감추어진 상처들 속에서 지치고 메말라 있었습니다.말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며, 가장 낮은 자리로 오신 주님 앞에 저의 교만을 내려놓습니다. 사랑받기보다 사랑하기를, 인정받기보다 섬기기를 선택하게 하시고, 굳어진 마음과 식어진 사랑을 다시 살려 주소서.천군의 찬양이 울려 퍼지던 그 밤처럼, 제 영혼에도 찬송이 회복되게 하시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허락하여 ..
우리의 모습. 그 연약함 ‘속’에 십자가가 세워집니다.믿음은 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입술로 고백이 되는 순간보다, 삶으로 흘러갈 때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을 생각으로 이해하고, 감정으로 확신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그 믿음을 보십니다.하나님의 말씀은 흩어진 수많은 명령처럼 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한 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사랑과 정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동시에 거룩하신 분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사랑으로 향하고 정의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말씀을 따른다는 것은 단순한 규칙의 준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삶입니다.그러나 복음은 여기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갑니다. 우리는 스스로 그 말씀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는 존재임을 드러냅니다. 사랑해..
주님, 끝내 주님의 나라에 이르도록 인도해 주소서.(누가복음 2장 1-7절)주님, 베들레헴의 작은 마을, 어두운 밤에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묵상합니다. 세상의 권세와 명령 속에 흔들리던 사람들 가운데, 주님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생명의 빛을 비추셨습니다. 죽음과 어둠에 갇힌 저의 영혼을 그 빛으로 깨워 주시고 새롭게 하여 주소서.주님, 마리아와 요셉의 마음은 두려움과 설렘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연약함 ‘속’에서도 주님의 뜻을 붙들었듯, 저 또한 불안과 의심 속에서도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자 합니다. 제 안의 무너진 믿음을 다시 세워 주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소서.말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은 세상의 화려함과 권세가 아닌, 겸손과 사랑으로 오셨습니다. 저의 교만한 마음을..
주를 경외하는 그 자리에 참된 생명과 쉼이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가져야 안전하고, 더 올라가야 비로소 안식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생명이라,”고 다른 길을 가리킵니다.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우리 존재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는 일입니다. 나의 뜻보다 그분의 뜻을, 나의 계산보다 그분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고요한 결단입니다. 이 경외는 우리를 억누르지 않고, 오히려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생명으로 이끕니다.십자가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심판을 대신 짊어진 사랑이며, 동시에 하나님을 다시 아버지로 부르게 하는 회복의 문입니다. 그러므로 경외는 더 이상 멀어짐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의 가까움입니다.하나님을 경외하는 사..
저의 삶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빛이 되게 하소서.(누가복음 2장 76-80절)주님, 광야에서 자라난 요한의 모습을 바라보며, 저의 영혼도 주님 앞에 고요히 서게 하소서. 세상의 화려함이 아닌 침묵의 자리에서, 사람의 박수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 앞에서 준비되었던 요한처럼, 저 또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삶으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깨닫게 하소서.주님, 사가랴가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노래했듯, 그 아이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세워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 자주 제 이름과 욕심을 앞세우며 살아왔습니다. 주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인정에 마음을 빼앗기고, 진리보다 편안함을 붙들며 살아온 저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소서.주..
시선이 주님께로 옮겨질 때, 그 믿음은 생명을 얻습니다. 주님 앞에 칭찬받는 믿음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자신을 향하던 시선이 주님께로 옮겨질 때, 그 믿음은 비로소 생명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다시 주님 앞에 섭니다. 체면을 내려놓고, 내 힘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면 이루어집니다. 닫힌 것은 열리고, 죽은 것은 살아나며, 무너진 삶은 다시 세워지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이며,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이제 우리의 믿음은 더 이상 머무르지 않습니다. 간구하는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되고, 사랑하는 믿음으로 이웃을 품게 됩니다. 나 자신을 위한 신앙을 넘어서, 하나님의 마음이 흐르는 통로로 ..
저의 삶이 구원의 은혜를 노래하는 찬양이 되게 하소서.(누가복음 1장 67-75절)주님, 사가랴의 입술 위에 다시 흐르기 시작한 찬양을 묵상하며 저의 영혼도 주님 앞에 조용히 무릎 꿇게 하소서. 오랫동안 침묵 속에 갇혀 있던 사가랴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깨닫고 터뜨린 찬양 속에서 잊고 살았던 은혜를 다시 기억하게 하소서.주님, 사가랴는 한때 의심으로 입이 닫혔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며 주님의 말씀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의 침묵은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새기게 하시는 은혜의 시간이었음을 봅니다. 저에게도 이해할 수 없던 침묵의 계절이 있었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습니다.주님, 주님은 침묵 속에서도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시며, 보이지 않는 순간에..
주님을 ‘향해’ 있으면 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향함은 그가 내 발을 그물에서 건지시기 때문이라" (시편 25:15) 눈이 향하는 ‘곳’에 삶이 따라갑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빛에 쓰러졌습니다. 그 순간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자기 확신, 자기 기준, 자기 의로움,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전혀 다른 존재였습니다. 눈이 먼 것은 육체의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자아가 죽은 사건이었습니다. 십자가가 그 안에서 일어난 것입니다.우리의 발은 이미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걸음은 종종 그물 속에 있습니다. 왜곡된 인식, 자기중심의 얽힘, ‘스스로’를 규정하는 틀. 인간은 그 구조에서 혼자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저의 완고한 마음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누가복음 1장 57-66절)주님, 오랫동안 아이를 기다리며 눈물로 세월을 견디던 엘리사벳의 ‘침묵’과,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해 입이 닫혔던 사가랴의 시간을 바라보며 제 안의 연약한 믿음을 돌아보게 하소서.주님, 사가랴는 성전 안에서 주님의 약속을 들었으나 눈앞의 현실이 더 크게 보여 끝내 의심하였습니다. 저 또한 기도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체념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면서도 정작 제 삶에서는 불가능만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의 완고한 마음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엘리사벳의 늦은 품에 아이를 안기시고, 닫혀 있던 사가랴의 입술을 다시 열게 하신 주님, 오늘 제 안에 닫혀 있던 영혼의 문도 열어 주소서. 주님, 오래된 상처와 ..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은 자주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선한 이가 눈물을 흘리고, 악한 이가 웃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흩어진 조각처럼 보이는 삶의 순간들까지도 하나의 뜻 안에서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한 조각만 보고 있지만, 하나님은 완성된 그림 전체를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라헬은 고통 속에서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습니다. 슬픔의 아들, 눈물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같은 아이를 바라보며 “베냐민”이라 불렀습니다. 오른손의 아들, 은혜의 자리에서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을 본 것입니다. 상황은 같았지만 ‘해석’은 달랐고, 해석이 달..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누가복음 1장 46-56절)주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이라는 마리아의 고백 속에는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들었던 한 여인의 눈물이 있었고, 이해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도 약속을 신뢰했던 믿음의 떨림이 있었습니다.주님, 마리아는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였지만, 하나님의 눈은 낮은 자를 향하고 계셨으며, 은혜는 가장 연약한 자리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습니다. 주님, 오늘 그 시선을 저에게도 허락하여 주소서.주님, 제 안에는 여전히 교만이 살아 있고 제 ‘힘’으로 인생을 붙들려는 완고함이 남아 있습니다. 높아지기를 원하고, 인정받기를 갈망하며, 하나님의 뜻보다 저의 계획을 앞세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
십자가는 그리스도만이 빛으로 남는 자리입니다.한때 우리는 스스로 빛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빛은 우리를 살리는 빛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없이도 설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은밀한 어둠이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참 빛”으로 드러냅니다. 그 빛 앞에 서면, 우리가 붙들고 있던 ‘나’라는 왕국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바울이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그는 자신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비로소 참된 빛 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 고백은 절망이 아니라 은혜가 시작되는 자리였습니다. 십자가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우리가 빛이라고 믿었던 ‘것’이 꺼지고, 그리스도만이 빛으로 남는 자리. 내가 붙들고 있던 ‘나’가 죽고, 하나님의 생명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처음에는 이 과정이 고..
주님의 음성 앞에서 저의 영혼이 다시 뛰게 하소서. (누가복음 1장 39-45절)주님, 은혜의 발걸음으로 산지를 향해 달려갔던 마리아의 마음을 오늘 제 안에도 부어 주소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아직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마음,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품고 나아갔던 그 순종을 바라보며, 제 안의 굳어 있는 마음도 다시 살아나게 하소서.주님,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 태중의 생명이 기쁨으로 뛰놀았듯이, 오랫동안 메마르고 침묵하던 저의 영혼도 오늘 주님의 음성 앞에서 다시 뛰게 하소서. 세상의 염려와 상처 속에 묻혀 있던 믿음이 주님의 임재 안에서 다시 숨 쉬게 하시고, 현실의 무게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크게 바라보게 하소서.주님, “주께서 하신 말씀이 ..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이야기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새롭게 거듭난 자로 변화되어 은혜 가운데 살아갑니다.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로 이끌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마음을 열어 줍니다. 영생은 미래의 약속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속에서 경험되는 은혜입니다.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은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짊어지신 사건이며, 동시에 우리를 향한 끝없는 사랑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회복과 생명의 초대입니다.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는 새로운 삶을 얻고, 은혜의 빛 속에서 걸어갑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이야기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새롭게 거듭난 자로 변화되어 은혜 가운데 살아갑니다.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로 이끌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마음을 열어 줍니다. 영생은 미래의 약속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속에서 경험되는 은혜입니다.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은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짊어지신 사건이며, 동시에 우리를 향한 끝없는 사랑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회복과 생명의 초대입니다.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는 새로운 삶을 얻고, 은혜의 빛 속에서 걸어갑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
저의 삶의 무너진 자리마다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소서.(누가복음 1장 24-25절)주님, 엘리사벳이 잉태한 후 다섯 달 동안 자신을 감추며, 주께서 자신의 수치를 거두셨음을 고백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은혜 앞에서 그녀는 깊은 감사와 경외의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주님, 저 또한 삶 속에서 때로는 사람들 앞에 드러내기 어려운 상처와 수치심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님, 엘리사벳의 고백처럼 저의 모든 아픔과 부끄러움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새롭게 덮이고, 회복되는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 제 영혼의 어두운 구석을 감싸 주시고, 제 마음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시며, 저의 삶의 무너진 자리마다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소서.주님, 엘리사벳이 은밀한 기다림 속에서 주님의 뜻을 묵상했듯, 저도 고요한..
